릴레이 : 책을 읽어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책 읽는걸 얘기하기는 좀 뻘쭘한 주제입니다.
윤호님처럼 화장실에서 소변보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그런데 소변보면서? 넵?),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는 거의 책을 손에 달고...까지 아니고, 꽤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고3인데도 수업시간 내내, 그게 수학수업이든 영어수업이든 국어수업이든 뒷자리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교과서 뒤에 숨겨놓고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성적이 안좋을 수 밖에 없는 주요 원인이였지만, 그럼에도 다른 딴짓보단 훨씬 아주 괜찮은 딴짓이였던거 같습니다.


무협지에서 세계문학으로, 수필집에서 시집으로, 인물전에서 경영서로, 마케팅 책으로 옮겨갔습니다. 비록 몸은 교실에 묶여 있었지만, 정신은 자유롭게 중세 유럽의 한 현장으로, 신산
(神山) 어느 자락에서 이기신검을 펼치는 주인공으로, 조선시대로 옮겼다가 치열한 마케팅 현장으로, 이어 다시 남녀의 뜨거운 숨결이 내뿜는 한국의 한 모텔로 옮겨갔습니다.

어느 무렵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좀 더 커서는 같은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책을 다 읽어도 내용이 나중에 딱히 기억나는 것도 아닌데, 왜 책을 읽어야해요?

드라마라든지, 책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책의 내용을 달달 외우잖아요. 먼가 비슷한 상황이 있음 한번 읇조려주는 센스. 그게 너무 부려웠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몇 구절은 밑줄을 치거나, 심지어 따로 다이어리 한편에 적어놓기도 했는데, 허무하게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머리에서 그 구절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 나는 역시 평범한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런데 조금 더 크고나서 알게 됐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얘를 암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사실을, 한 권 한 권 더해진 책들이 나도 모르게 내것이 되고 있었음을, 단지 그게 시험 문제 풀듯 확인할 수 있는게 아니였던 것 뿐이였습니다. 밥 한그릇 먹고 나서의 몸무게는 먹기 전보다 밥 한 그릇만큼 늘어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화되고 소비하고 배출하고, 좀 더 지났을 땐 어떤식으로든 제것이 되어 있는거랑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책의 내용을 다 기억한다면 어떤 순간에 나도 멋지게 한마디 읇조려 주겠지만, 나만 멋지다 생각할 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재수없는 놈~ 조낸 잘난척질하네'정도란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끝으로 정리해보면,
독서는 [기억이 안나도 언젠가 도움이 되는 머리가 먹는 밥]이다.

라고 나름 정리할 수 있겠군요.
 
 
 
* '독서는 [          ]이다' 릴레이는 아래의 순서로 전해졌습니다.
Inuit 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buckshot님 > 고무풍선기린님 > 류한석님 > mahabaya님 > 어찌할가님 > 벼리지기님 > 바람의 노래님 > 모노피스님 > 꼬미님 > 김형규님 > 꼬날님
> 윤호님

릴레이의 규칙은 다음과 같데요.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저는 이 릴레이를,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가장 중요한 egoing님한날님에게 바톤을 넘겨보겠습니다.
받아주세요. 두 분의 글쓰기 방식이 릴레이와 좀 달라서 내심 걱정은 되지만... ^^
 
 
글을 쓰면서, 윤호님이 유저스토리랩에서 만들고 있는 '유저스토리북'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군요. 이름이 랩(Lab)이니, 지금까지 많은 실험을 위한 사전준비를 했습니다. 아직은 기반이 되는 플랫폼(이를테면, 온라인 실험실?)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구요. 엄밀히 말해서 '유저스토리북'은 그 플랫폼에 올라가는 첫번째 확장(!)서비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책이냐구요? 회사를 이끌고 있는 윤호님이 이렇게나 책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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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going 2009/06/12 15:48 수정/삭제

    "윤호님처럼 화장실에서 소변보면서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를 보고 뒤집어졌습니다. 여러분 잘 모르시겠지만, 윤호님 손에서 찌린내 납니다.

    답글
  2. 고무풍선기린 2009/06/12 16:04 수정/삭제

    어느 책에선가 책을 읽으면 그것이 무의식의 영역에
    저장 되어 있다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저절로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어
    사용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

    답글
  3. mahabanya 2009/06/12 16:49 수정/삭제

    찌렁내 내면서까지 읽을 필요는;;; 그리고 화장실에서 책읽어버릇하면 변비온다능;;;

    전 욕조에 몸담그고 책읽는거 좋아하는데 조명이 어둡다능orz

    답글
    • BKLove 2009/06/12 16:53 수정/삭제

      ㅋㅋ 그럴 땐 책이 방수라면 좋겠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이제 서울에서 혼자 사니, 욕조가 없는 집이라 못하네요. ㅠㅠ
      일본에서 파는 온천욕을 흉내내는 가루(!)를 넣고 있음 좋은데...

    • mahabanya 2009/06/12 18:21 수정/삭제

      욕조에 독서대와 조명이 있으면 좋겠어요. 욕실 조명은 너무 어두워서T-T

    • BKLove 2009/06/15 11:35 수정/삭제

      이런걸 보면, 뭔가 집짓는 사람들은 아직 멀었단 생각도 들어요.
      굳이 힘들게 욕조에 TV를 집에 넣는 것보다..
      책 읽을 수 있는 조명 하나가 훨씬 좋은데...

  4. inuit 2009/06/12 23:08 수정/삭제

    아주 적절한 비유와 설명이십니다.
    결국 왔다가 가지만 남겨놓는게 있다는거죠. ^^

    (텍큐는 이상하게 트랙백이 안걸려요. ㅠ.ㅜ 죄송합니다.)

    답글
  5. Read&Lead 2009/06/12 23:51 수정/삭제

    기억나지 않아도 어딘가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는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릴레이 포스트용으로 적은 글은 트랙백이 안 걸리는데 다른 포스트는 트랙백이 걸리네요. ^^

    답글
  6. 초하 2009/06/13 12:44 수정/삭제

    그래도 꽤나 건전한 일탈을 즐기셨던 학창시절이 부럽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글 두 개를 엮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눔' 이벤트에 도움 요청하려구요.
    읽어보시고, 가능하시면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답글
  7. 꼬미 2009/06/15 08:48 수정/삭제

    머리가 먹는 밥이라는 표현이 독특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
    책을 읽어서 무언가를 기억하기는 참 어려운것 같아요..
    저역시 그 책의 문구를 특별히 기록해 놓는다거나 하질 않아서 읽자마자 머리속은 새하얗게..
    그래도 문득문득 필요할 때면 떠오르는 경우가 있으니.. ㅎㅎㅎ

    좋은 생각 잘 보고 가요~ ^^

    답글
  8. 마음으로 찍는 사진 2009/06/15 14:44 수정/삭제

    가장 처음의 윤호님 이야기와 "기억이 안나도 언젠가 도움이 되는 머리가 먹는 밥"라는 부분이 인상 깊네요. ㅎㅎ 저도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나봅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흑

    답글
  9. 비밀방문자 2009/06/28 20:08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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