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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 이렇게 순응하는 것이, 힘이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에는 권력과 멀리하는 것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습니까?
 
(중략)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그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돌아올 줄 알았다. 최근의 뉴스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난 그를 완전하고 흠결 없는 정치인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었기에. 뭐가 어찌 되었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돌아올 거라 여겼다. 그는 내게 그만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투신을 했단다. 투신이라니.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것만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죽음이 아니라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하루 종일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투신 직전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씩씩한 남자가,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 개비를 찾았단다.

울컥했다.

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가 왜 없었냐고. 에이 씨바... 그거는 피고 갔어야 하는 건데. 그때 내가 옆에서 담배 한 개비 건네줬어야 하는 건데. 그가 그렇게 가는 걸 말리진 못한다 하더라도 담배 한 개비는 피우고 가게 해줬어야 하는 건데. 노무현은 그 정도 자격 있는 남잔데.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보내버렸다는 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난다.


스스로 추구했던 깨끗함을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절망감과 퇴임 이후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회한, 그리고 오랜 투쟁의 삶 속에서 수십 년 간 쌓인 피로와 외로움이 얼마나 컸던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고집불통의 노무현이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아직도 서슬이 퍼런 전직 대통령을 향해 호통치던 성깔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에게만큼은 한번도 성질을 부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기는커녕 너무 권위가 없어 세간의 비웃음만 당했던 대통령. 그게 인간 노무현이 추구하던 민주주의였다. 너무 앞서 갔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옳은 방향이었다.



오늘은 무언가를 찾고, 읽고, 보고 그래야만 하는 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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